
한국 수산양식은 세계 10위권 안팎 규모다. 해조류 분야는 눈부시다. 한국산 김은 글로벌 시장 점유율 70%에 이르고, 미역과 다시마도 상위권이다. 그러나 어류와 패류 양식은 유엔식량농업기구(FAO) 기준 15~20위권에 머문다. 특히 어류는 질병과 항생제 의존이 고질적 문제다. 이런 구조적 한계와 원물 위주의 수출 때문에, 한국산 수산물은 국제시장에서 값싼 대중재로 취급된다. 양은 많지만, 힘 있는 브랜드는 없다.
수산양식 분야에서는 많은 이들이 노르웨이 연어 산업을 성공 모델로 언급한다. 그러나 단순 모방은 답이 아니다. 세계 양식업은 이미 새로운 해법을 찾고 있다. 유럽은 육상 순환양식시스템(RAS)으로 환경 부담을 줄이고, 중국은 초대형 해상 가두리로 규모의 경제를 노린다. 대체 단백질 산업도 빠르게 성장 중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한국이 가야 할 길은 따로 있다. 해조류와 어류를 동시에 혁신해 ‘한국형 블루이코노미’를 세우는 것이다.
첫째, 한국 양식업의 기업화와 금융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지금처럼 어민이 모든 위험을 떠안는 구조로는 지속성이 없다. 자본을 모으고, 연구개발과 마케팅에 재투자하는 선순환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금융이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기업-어촌 협력 모델을 갖추는 것이 출발점이다.
둘째, 디지털 전환은 생존의 문제다. 어류 양식의 가장 큰 약점인 질병과 항생제 의존을 정보통신기술(ICT)을 적용해 줄여야 한다. 수질, 먹이, 성장, 건강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관리하고, 원격 모니터링과 친환경 사료를 도입해야 한다. 유통 단계도 블록체인으로 관리하면 소비자 신뢰를 얻을 수 있고, 생산자는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여기에 인공지능(AI)을 접목하면 질병 예측과 맞춤형 관리까지 가능하다.
셋째,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 블루카본은 한국이 앞설 수 있는 영역이다. 해조류는 단순 식재료를 넘어 탄소 감축의 핵심 자원이다. 김·미역·다시마를 블루카본, 헬스케어, 바이오소재로 확장한다면 국제 ESG 투자와 연결할 수 있다. 기후위기 대응에서 한국 수산업이 독창적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지점이다.
넷째, 청년 창업과 지역 재생이다. 고령화된 어촌은 쇠퇴의 길을 걷고 있지만, 양식업은 청년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창업 지원과 교육, 인큐베이팅을 통해 청년이 돌아온다면 산업은 활력을 얻고 지역은 되살아난다. 청년의 아이디어가 관광·외식 산업과 만나면 지역 전체가 움직인다.
다섯째, 브랜드 전략이다. 지금까지 한국산은 ‘값싸고 신선한 재료’에 머물렀다. 이제는 건강·미식·친환경을 앞세운 ‘K-씨푸드’ 브랜드를 세워야 한다. 원물 수출을 넘어 가공식품, 기능성 식품, 친환경 인증 제품으로 확장할 때 비로소 글로벌 프리미엄 시장에서 인정받는다.
여섯째, 해양 바이오·식품·에너지 융합은 미래 성장의 열쇠다. 해조류는 바이오 연료, 기능성 의약품, 친환경 소재로 발전할 수 있다. 어류 양식도 ICT와 바이오 기술을 결합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키울 수 있다. 양식업은 단순히 먹거리 산업이 아닌 국가 신성장동력으로 전환하는 핵심 축이 될수 있다.
한국 수산양식은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생산량 확대만으로는 경쟁력을 지킬 수 없다. 그러나 기업화, 디지털 전환, ESG, 청년 창업, 브랜드 전략, 해양 바이오 융합을 함께 추진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해조류와 어류를 아우르는 한국형 블루이코노미가 해답이다. 한국은 단순한 양식 강국을 넘어, 해양 미래 경제를 이끄는 나라로 도약할 수 있다.
김태호 전남대학교 해양생산관리학과 교수